평화연구를 위한 모색

임재성

Jaesung Lim.    Photo : World Without WarJaesung Lim. Photo : World Without War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그렇겠지만, 병역거부는 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병역거부란 단순히 신념을 선언하고 감옥에 갇혔던 경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병역거부자-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저는 평화운동을 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출소 이후 평화연구를 하겠다고 결정한 이후에도 병역거부는 가장 주요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그러한 저의 경험들과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생시절 좌파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병역거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매우 군사주의적인 국가여서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종교(여호와의 증인)의 별난 일로서만 여겨졌기에, 사회운동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저는 2002년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이 아닌 대체복무제도가 주어져야 한다는 인권의 관점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자들, 평화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스스로의 신념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저 역시 군인이 되어야 했지만, 별다른 고민을 가지지 못해왔습니다. 한국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학생운동의 역사가 매우 길었고,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감옥에 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단 한 명의 병역거부자도 등장하지 않았을 만큼 군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병역거부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스스로가 군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비록 감옥에 가야만 했지만 전 제가 가진 반전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택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은 군대와 군인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를 사회적으로 일깨워 준 최초의 사회운동이었습니다.

수감시절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은 빈번하게 접견을 와 주었고, 많은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에 있어서 평화수감자들에게 이러한 후원을 하는 것은 주된 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1년 6월 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1년 6월 형량은 당시 병역거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졌던 형량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군사법정이 아닌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형량 역시 3년에서 1년 6월도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기결수가 된 이후에는 충주구치소로 이감이 되어서 종이봉투를 만드는 일을 했고(징역형을 받은 이들은 일정한 작업을 감옥에서 해야 합니다) 지난 2006년 5월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수감시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평화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평화학이라는 것이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관련 연구자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저 개인적으로도 병역거부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던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군대, 폭력, 전쟁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평화학을 전공할 수 있는 학과가 없었기에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 쪽의 평화관련 학과로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한 제안도 있었지만 여러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할 계획이었기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회학을 택한 이유는 학문의 영역이 넓어서 제가 가진 평화연구의 주제들을 포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학은 기존의 국제관계을 바탕에 둔 전쟁-평화 연구가 아닌 실제 사회 속에서 폭력과 군사주의가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저는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을 평화운동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용으로 졸업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병역거부는 한국에서 늘 뜨거운 주제였지만, 여전히 ‘대체복무제’ 개선에만 초점을 두는 연구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병역거부운동의 반군사주의적 측면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강력한 군사주의 속에서 ‘양심의 자유’와 ‘반군사주의’라는 가치가 운동 내부에서 어떤 긴장관계를 형성하는가를 살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징병제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군사주의가 형성되어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병제만큼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준 제도도 없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뭅니다. 군사주의 역시 추상적으로만 사용되지, 실제 형성과정이나 영향력에 대한 경험적 연구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연구가 한국 평화운동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사회는 이제 조금씩 비폭력이라는 가치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5-6월 수십 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외친 비폭력은 모두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군대와 병역에 대한 비판적인 활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과 병역거부자들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저 역시 병역거부자로서, 한국사회에서 거의 시작단계에 가까운 평화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노력이 한국의 평화운동에 작지만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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