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생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들

이용석

Yongsuk Lee. Photo : World Without WarYongsuk Lee. Photo : World Without War2005년 12월 1일. 오랫동안 알고지내오던 친구 부르뎅(김태훈)과 병역거부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김영진과 함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언론에서 병역거부자가 한 명 더 나타나는 것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 함께 기자회견을 했던 것이다. 나는 입영날이 12월 21일으로 입영영장만 나와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입영일이 되기 전에 선언을 하게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교 시절부터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저항하는 보다 급진적인 운동을 하고 싶어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던 학생운동 그룹이 병역거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병역거부운동에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나서 평화주의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병역거부자들이 일반적으로 입영일로부터 3~4개월 안에 구속된 것과는 다르게 나는 2006년 8월에 구속되었다. 그 당시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구속수사로 바뀌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법원이 불구속수사를 결정하자 담당검사가 반발하면서 재차 구속영장심사를 하느라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구속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기간 동안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여러 활동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경험은 평화운동과 비폭력에 대한 고민을 넓혀주었던 좋은 계기였다.

병역거부자들은 일반적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을 간다. 구치소에서 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구치소와 교도소 총 2곳에서 1년6개월을 수감생활을 한다. 나는 총 4군데의 교도소와 구치소를 거쳤다. 앞서 말한 평택 미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병역거부로 수감이 된 이후에 그 사건이 재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당시 군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나는 재판부가 소재해있는 수원구치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고, 재판이 끝날 때 까지 그 곳에 머물렀다. 다른 곳의 수감생활도 쉽지는 않았지만, 수원구치소에서의 수감생활은 그중 가장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 감옥의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의 협소함이다. 이것은 굳이 병역거부자들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교도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사람당 05.평의 공간이 주어진다.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다른 교도소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죽었다며 한 방에 2명만 넣으면 안된다는 공문이 법무부에서 내려왔었다. 나는 당시 1평짜리 방에서 2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 조치로 인해서 1평 방에서 3명이 살게 되었다. 2명이 누워 자면 방안이 가득 차게 되는 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누워도 한명을 몸을 똑바로 누울수 없다.

이런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는 이미 각오를 하고 왔었고,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는 내 마음속에 있었다. 단절감. 나는 감옥 안에 있을 때, 많은 친구들로 부터 편지와 관심과 지지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수원구치소 조그만 독방에서 살아있는 것은 나와 국화화분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화분이 시들어갔다. 차가운 시멘트 방에서 생명이라 불리는 것이 나 혼자라는 고독함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깥 세상은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써 자신을 자각하기에는 나는 아직 나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에 맞서 싸우던 평택의 주민들이 쫓겨나도, 한미FTA가 졸속적으로 체결되어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내가 설사 감옥 밖에 있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옥 안에서도, 감옥 밖에서도 내가 있을 곳은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무력감과 외로움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다. 역시 수원구치소에 있을 때였다. 같은 방안에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감을 가거나 출소를 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그 사람이 떠나고 난 후 다른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미운감정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그 때 읽고 있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미움은 다른 사람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난 다시 입영영장을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감옥을 가고 싶지는 않다. 물론 감옥도 사람 사는 곳이라, 스스로 노력하기에 따라서 그 시간에서 배워올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절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었다. 억지로 수감생활을 미화하거나 반대로 상처를 부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평화운동을 하면서 혹은 다른 이유에서든 감옥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감옥이 두려워 무언가를 못하지는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그 곳에서 내 삶을 한 순간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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