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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항한다!

이길준

A picture of Lee Gil-jun's declaration of his conscientious objection at a press conference, in July, 2008.  Photo : http://cafe.daum.net/resistjunA picture of Lee Gil-jun's declaration of his conscientious objection at a press conference, in July, 2008. Photo : http://cafe.daum.net/resistjun저는 지금 현역 의경으로 복무를 하다 특별외박을 나와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려 합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결정이 야기할 수많은 고통과 상처들, 특히 제 부모님이 겪으실 일을 수없이 생각했고, 그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과정은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꽤나 거창하게 들리죠. 하지만 제가 하려는 일은 엄청난 대의를 가진 일이 아닙니다. 단지 삶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가지고, 저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그렇습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지난 2월, 지원을 통해 의무경찰로 입대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제 결정과 관련해서 말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면 저나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에 복무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의무경찰이었죠.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무책임한 선택이란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퇴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경으로 있는 동안 제가 느낀 건, 언제고 우리는 권력에 의해 원치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달 간의 촛불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촛불을 들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미국과의 소고기 재협상 요구, 공기업·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대 같은 것들이 이런 목소리로 느껴지더군요.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모였고,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비장한 투쟁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삶을 위협할 수 있는 권력에게는 소통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또래의 젊은이들과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들을 적개심을 가지고 맞붙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았죠. 저와 같은 친구들이 특별히 악랄해서 시민들을 적으로 여기고 진압해야 했을까요? 모두가 저처럼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복무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집회를 참여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갔겠어요. 하지만 권력은 시위대는 적이 아니라고 명심하라는 위선적인 말을 하며 실질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 시민들을 적으로 상정하게 하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힘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집니다.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권력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암묵적으로 그저 적으로 상정된 시위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덮고 합리화를 시키는 거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건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워지더군요.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갓 스물의 젊은이들이 폭력적인 억압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가요? 그런 정당성은 누가 보장해주나요?

힘든 시간 동안 전 일단 어떤 식으로든 도피를 모색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도피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에 있든 제가 그곳에 남아 있는 한 결국 억압의 구조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할 것이고 그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일 뿐이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 저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응하고 가해지는 상처를 외면하면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적이고 껍데기 뿐인 인간으로 남을 거란 불안도 있었고요.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가는 삶을 재정립하는 방법은 저항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늘 타협 했을 뿐 자신 있게 저항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는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느껴졌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전 스스로를 어지러운 정국의 희생양이나 순교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탄 영웅이 되고 싶은 건 생각도 없어요.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어떤 이득을 취할 생각도 없고요. 전 단지 스스로에게 인정될 수 있고, 타인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에요.

비장한 각오의 투쟁을 선언하고 싶진 않군요. 전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억압의 조건은 힘겹지만 그에 대항해 자신을 찾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무겁게 받아들일 일만은 아니에요. 저도 노력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나가는 것도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제가 한 행동을 통해 저는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아울러 폭력이 강요되고 반복되는 지금의 구조들도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상처를 받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는 일만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끝으로 제 얘기를 듣고 저를 도와주시며 지금도 함께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못난 아들을 위해 상처를 감수하고 이해하고 제 편이 되어주시는, 어려운 결정 내리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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